🧎🏻 "너한텐 나 말고 없잖아?"

2023. 6. 1.

019 | 🧎🏻 "너한텐 나 말고 없잖아?"

POV: Point of View의 준말로서, 시각, 관점, 견해를 뜻합니다. Point of View(포인트 오브 뷰)는 관객의 다양한 시각을 통해 영화에 대해 넓고 깊게 대화하며 각자의 취향을 구체적으로 찾고 '좋은 영화란 무엇인가' 고민하기 위함을 목적합니다. ✍🏻 매주 목요일 발송

포인트 오브 뷰(Point of View) 구독자 수가 1,000명을 넘었어요! 🎉

앞으로도 관객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뉴스레터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019

6월의 감독 | 폴 토마스 앤더슨 Paul Thomas Anderson

2023. 06. 01. 목요일

웹에서보기 | 구독하기

POV :

🧎🏻 "너한텐 나 말고 없잖아?"

<마스터>(폴 토마스 앤더슨, 2012)

(⚠️ 스포일러 주의) 영화 속 인물은 서사적 변형을 통하여 주체로서 새로운 삶과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보이듯, 어떤 사건을 계기로 실패한 삶을 살게 된 인물은 결국 자신의 결핍과 결함을 인정하고 극복하여 행복한 결말에 이르게 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마스터>의 주인공 프레드 퀠은 해변의 모래 인형 옆에 누워있는 것처럼, 관계될 수 없는 허상과 함께 자신의 주체적 삶을 포기하기를 반복합니다.

이 영화의 첫 쇼트는 혼란스럽게 흐르는 바다의 물결을 보여주면서 시작합니다. 이러한 속성은 프레디 퀠의 캐릭터와 닮았는데요. 그는 바다에서 전쟁을 치렀던 참전용사입니다. 전쟁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그는 그런 자신의 주체적 삶을 회복해내지 못합니다. 백화점에서 사진사로 일을 시작해 잘 적응하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퀠은 사진을 촬영할 때 조리개를 닫고 필름 홀더를 빼고 촬영합니다. 즉 아무것도 아닌 암흑을 찍습니다. 필름 카메라의 기본 매커니즘은 빛에 감광되지 않는 생필름을 빛에 노출시켜 카메라 바깥의 외형이 필름에 저장되게 즉, 외형의 모습이 필름에 실제 하게 하는 것인데요. 퀠은 빛이 차단된 카메라의 내부 공간을 촬영해 자신이 사람들에게 말하는 "날 보고 웃으세요."조차 찍지 못하는 그러니까, 사람들과 관계되지 못하는 인물임을 암시합니다.

그러다 퀠은 바다에서 자신이 세운 종교를 믿는 사람들로 가득찬 요트 안에서 결혼식을 축하해 주고 있는 랭커스터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을 작가, 의사, 핵물리학자, 이론 철학자라고 표현하는데요. 바다에서 전쟁으로 인해 PTSD(외상 후에 받는 스트레스)을 겪으며 불안정한 삶을 살던 퀠에게는 그의 주체적 모습이 희망적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를 주인(마스터)으로 삼고 추종하기 시작하는데요. 모든 것을 완벽히 통제하는 것만 같았던 그 또한, 자신이 세운 종교 철학의 결함이 표면으로 드러나자 엄청난 방어기제로 새로운 이론을 세우기를 집착하며 자신의 아내 페기 도드와의 관계조차 수음(手淫)을 받으며 정상적인 관계를 이어가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도드에게 수음을 받는 씬은, 도드가 거울에 모습을 드러나고서야 랭커스터가 거울에 숙였던 허리를 펴 모습을 보이고 사정(射精) 이후 다시 허리를 숙인 랭커스터는 도드가 프레임 아웃될 때까지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독단적으로 보이지 못하고 뒷모습만을 보입니다. 즉, 랭커스터 또한 퀠과 같이 자신의 정체성을 정착시키지 못하는 불안정한 인물인 것이죠.

"프레디는 그러나 그 수족관을 부수고 바다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녔다. 그에게 운명과도 같은 바다는 "자신의 주인이 돼라"는 마스터 랭카스터의 명령을 상회한다. (...) 랭카스터 또한 프레디의 목에 둘러놓았던 '올가미'를 당겼다 풀어놓기를 반복하며 그를 길들이길 꿈꿨으나, 이제는 무력하게 집으로 돌아가야 할 뿐이다. 그 순간 흐르는 조 스태포드의 'No Other Love'가 그보다 애잔하게 들릴 수 없다."라며 "그렇게 <마스터>는 고향과 역사를 잃은 자들을 위한 세레나데가 된다."라고 이후경 평론가가 *언급하듯, <마스터>는 인물이 자신의 결핍과 결함을 끝끝내 수정하지 못한 채로 결말을 맺게 되는, 하지만 자신의 그 어떤 가치가 멸실하게 되어 불안정한 삶을 살던 관객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이번 주는 이러한 불안정한 인물로 가득한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를 보며, <마스터>와 같은 그 캐릭성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눈여겨보며 같이 몇 편 감상하는 건 어떨까요? 아래에 'No Other Love' 유튜브 링크를 걸어놨으니 같이 들으며 이번 뉴스레터를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참고문헌 |

*현대 미국의 정신적 풍경(2013) | 이후경

✉️ POV 공유

👀 트리비아

트리비아: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숨겨진 이야기나 여러 방면에 걸친 사소한 지식

1) 감옥 씬에서 호아킨 피닉스는 실제로 변기를 즉흥적으로 부순다. 그 변기는 오래된 건물에 있던 것이기 때문에, 피닉스는 부술 마음도 그리고 그게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2) 과일 통조림에 연료를 섞어 마시는 것을 뜻하는 해군 은어 Jug-Juice는 USS 호넷 박물관의 항공 모함의 직원이 자세히 설명해줬다. 프레디가 배 위의 어뢰에서 에탄올을 꺼내는 장면도 Jason Robards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3) 2018년, 폴 토마스 앤더슨은 <마스터>가 그의 가장 자랑스러운 영화라고 언급했다.

4) 며칠 간의 촬영 후, 폴 토마스 앤더슨은 호아킨 피닉스가 촬영 공간의 전체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조명 팀에게 만약 필요하면 카메라와 함께 피닉스를 따라갈 수 있는 전체적인 공간을 준비하라고 말했다.

5) 이 영화의 예고편은 폴 토마스 앤더슨이 스튜디오의 허락 없이 직접 편집했다. 예고편은 영화의 파이널 컷(최종 편집 버전)에 등장하지 않은 장면들로 구성되어 주목을 받았다.

6) 폴 토마슨 앤더슨은 L. 로널드 허버드와 사이언톨로지 교회의 'The Cause' 철학이 랭커스터 도드 캐릭터를 구성하는 요소를 기초로 한다고 인정했다. 사이언톨로지 교회가 허버드 비판자들에 대한 오랜 소송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폭로는 언론에서 많은 논의를 촉발시켰다. 해당 교회는 영화에 대한 공식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앤더슨은 사이언톨로지 옹호자인 그의 친구 톰 크루즈를 위해 상영했을 때 크루즈가 엄청나게 화를 냈다고 주장했다.

7) 이 영화는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오스카 후보 지명을 기록했다.

8)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이 영화의 wrap party를 위해 23년 만에 술을 마셨고, 때문에 알코올 중독이 재발했다.

9) 호아킨 피닉스의 부모는 1970년대 악명 높은 Children of God(COG) 종교 단체에서 탈출했다.

10) 입을 꽉 다물고 한쪽에서 말을 하는 효과를 얻기 위해, 호아킨 피닉스는 치과의사에게 금속판을 고무줄로 치아에 부착해 치아에 고정시켜달라고 했다. 하지만 고무줄이 그의 입을 다물게 할 만큼 강하지 않아서 그것들을 제거했다. 그럼에도 그의 뺨 안쪽을 살짝 잘라낸 나사로 완성된 금속판은 그가 캐릭터의 그런 측면을 연기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11) 프레디가 해변 씬에서 첫 번째 대사는 즉흥 연기다.

12) 제레미 레너가 몇 년 전 원래 프레디를 연기하려고 했지만 자금 조달에 실패해 무산되고, 호아킨 피닉스가 <아임 스틸 히어>(2010) 프로젝트 이후에 캐스팅되었다.

(스포일러는 드래그로 복사해 볼 수 있어요)

출처: IMDB

🇰🇷 국내 박스오피스 05. 22. ~ 05. 28.

1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2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

3 인어공주

4 범죄도시3

5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 미국 박스오피스 05. 19. ~ 05. 25.

1 Fast X

2 Guardians of the Galaxy Vol. 3

3 The Super Mario Bros. Movie

4 Book Club: The Next Chapter

5 Evil Dead Rise

🇰🇷 국내 개봉 일정

6. 1. 미드나잇 스완, 우치다 에이지

6. 7. 이윽고 바다에 닿다, 나카가와 류타로

🇺🇸 미국 개봉 일정

6. 2. Spider-Man: Across the Spider-Verse, Joaquim Dos Santos•Kemp Powers, Justin K. Thompson

6. 2. The Boogeyman, Rob Savage

6. 2. Simulant, April Mullen

6. 9. Transformers: Rise of the Beasts

6. 9. Meding the Line, Joshua Caldwell

* 🎬 메타스코어 🍅 토마토미터 🍿 오디언스 스코어

🔒 OTT 공개/종료 예정

넷플릭스

공개 제이슨 본, 본 아이덴티티(1), 레지던트 이블 2, 레지던트 이블 3 : 인류의 멸망(2), 카운트(6), 어쌔신 크리드, 빅쇼트(10), 데어 윌 비 블러드, 겟 아웃(15)

종료 독전(14)

왓챠

공개 빅쇼트(2), 헤어질 결심(6), 상견니(12), 외계+인 1부(20)

🗞️ 이주의 뉴스

제76회 칸영화제 주요 수상 결과

지난 27일(현지시간) 제76회 칸국제영화제가 폐막했습니다. 이번 칸영화제는 초청된 대부분의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으며 전 세계 시네필들의 관심과 기대가 모이는 시간이었는데요. 오늘은 어떤 작품이 칸영화제 상을 쥐게 됐는지 알아볼게요.

황금종려상(최고작품상)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인기 소설가의 유죄 또는 무죄를 조사하는 법률 드라마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Anatomy of a Fall>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습니다. 이 영화는 그들의 사생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법정으로 가져와, 언론, 대중, 청중들이 해부할 수 있게 하는데요. 트리에는 <피아노>의 제인 캠피온과 <티탄>의 쥘리아 뒤쿠르노에 이어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세 번째 여성입니다.

그랑프리(심사위원대상)

쥘리아 뒤쿠르노가 조나단 글레이저의 <The Zone of Interest>에 그랑프리를 수상했습니다. 이 영화는 이번 칸영화제에서 평론가들의 충격적이면서도 좋았다는 호평을 많이 받은 영화인데요. 이 영화는 (영화제 도중 세상을 떠난) 마틴 에이미스의 2차 세계대전 소설을 각색한 영화로, 아우슈비츠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을 처형한 독일 지휘관의 사생활을 묘사합니다.

심사위원상

핀란드 출신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Fallen Leaves>가 심사위원상을 수상했습니다. <Fallen Leaves>는 스크린 지에서 최고점 3.2점을 받을만큼 가장 반응이 좋았는데요. 헬싱키에 사는 한 여자가 알코올 중독자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고 해요. 매니층이 탄탄하던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6년 만의 작품이라 기대가 많이 쏠리고 있습니다.

∙ 쩐아인훙 감독의 <The Pot au Feu>가 감독상을 수상했어요.

∙ 사카모토 유지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Monster>로 각본상을 수상했어요.

∙ 야쿠쇼 코지 배우가 빔 벤더스 감독의 <Perfect Days>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어요.

∙ 메르베 디즈다르 배우가 누리 빌제 세일란의 <About Dry Grasses>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어요.

∙ 플로라 애나 부다 감독의 <27>이 단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어요.

∙ 팜 티엔 안의 <Inside the Yellow Cocoon Shell>이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어요.

∙ 몰리 매닝 워커 감독의 <How to Have Sex>이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을 수상했어요.

교황을 만난 대부 ⛪️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29일(현지시간) 데드라인은 스콜세지 감독이 지난 27일 바티칸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나는 예술가들에 대한 교황의 호소에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인 예수에 대한 영화를 쓰는 것으로 응답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날 스콜세지 감독은 아내 헬렌 모리스와 함께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는데요.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 <사일런스>(2016) 이후 오랜만에 종교 테마의 영화라 다들 관심이 쏠리고 있어요.

∙ <킬 빌>이 개봉 20주년을 맡아 4K로 리마스터링될 예정이에요.

∙ <토니 에드만>에서 빈프리트 역을 맡았던 페테르 시모니슈에크 배우가 76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어요.

🏊🏻 편집자의 디깅

이번에 소개하고 싶은 편집자의 디깅은, 1965년 생 영국 🇬🇧 출신 감독 조나단 글레이저(Jonathan Glazer)입니다. 워낙 유명한 감독이라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은 많이 아실텐데요. 글레이저는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뮤직 비디오와 광고를 감독 하는 일을 했는데요. 현재까지도 애플, 나이키, 리바이스, 랭글러, 기네스 등 유명 브랜드의 광고와 매시브 어택, 블러, 라디오 헤드 등의 뮤직 비디오 감독을 맡는 등 이미 업계에서는 유명 인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 <언더 더 스킨>(2013)이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각종 영화제의 초청과 시상식의 후보로 올랐지만 상을 받은 적은 없었는데요. 이번 칸 영화제에서 <The Zone of Interest>가 엄청난 호평을 받으며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해 다시 한번 자신의 명성을 굳건히 했어요. 조나단 글레이저는 주로 어둡고 실험적인 시각적 요소와 정체 모를 웅장한 사운드를 활용해 영화를 제작하는데요. 이런 그의 연출은 인물 중심의 강렬한 감정적인 서사를 전달하는데 도움을 주며, 정체성, 실존주의 그리고 인간 조건의 주제를 탐구하는 그의 영화 주제에 잘 어울려집니다. 그의 데뷔작 <Sexy Beast>(2000)는 레이 윈스톤과 벤 킹슬리가 주연을 맡았는데요. 은퇴한 갱스터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Birth>(2004)는 10살 소년이 죽은 남편의 환생이라고 확신하게 되는 니콜 키드먼 주연의 심리 드라마이고, 그의 가장 유명한 대표작 <언더 더 스킨>은 SF 영화로, 스칼렛 요한슨이 스코틀랜드의 남자들을 유혹해 잡아먹는 이야기입니다. <언더 더 스킨>은 현재 왓챠에도 공개되어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의 순위에 데이빗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함께 자주 뽑히는 영화인 만큼, 영화를 다 보고 만약 다른 사람의 해설이 궁금하다면 이동진 평론가의 해설🔗도 같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대표작: <Under the Skin>(2013), <Sexy Beast>(2000), <Birth>(2004), <The Zone of Interest>(2023)

✍🏻 구독자의 대화

저희 뉴스레터에서는 매주 영화에 대한 구독자의 짤막한 감상 및 한문단평(200~500자 내외)을 기고 받아 소개하고 있습니다. 꼭 영화를 잘 알지 못한다 생각이 되어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써보거나 말해보는 연습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구독자의 영화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이 궁금합니다. 원고 많이 보내주세요. 🙂

말없는 소녀 | 콤 바이레아드

(⚠️ 스포일러 주의)

두 가정 사이에는 당연히 대조점들이 눈에 먼저 들어오지만, 사뭇 유사한 장면들이 연출될 때가 있어서 이상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댄이 그러했듯 숀이 백미러로 카이트를 말없이 쳐다보는 장면이나 카이트가 떠나는 날 직전에 두 부부가 아래층에서 카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들이 그러하다. 억지스럽긴 해도 여기에서 더 나아가 두 가정이 지니는 환경적인 공통점들도 엮어보자면 몇 군데 비슷한 지점들이 존재한다. 차량 진입로가 긴 농가라는 구조도 유사하며, 친부모의 집에서 갓난아기와 송아지의 예정일이 겹치듯 카이트의 동생이 태어났단 편지가 온 다음날 숀의 고장에서 송아지가 태어났다는 점도 그러하다. 심지어 숀과 에이블린이 카이트를 친부모에게 데리고 오는 장면이 자아내는 불편한 텐션은 댄이 처음 두 부부에게 카이트를 데려온 장면과 대구를 이루듯 보이듯이, 두 가정의 정경 사이의 유사점들은 카이트가 친부모에게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임박할수록 더욱 많이 표면화된다.

비약이 심해 보일 수 있겠지만, 어쩌면 이렇게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대구들은 두 가정이 카이트에게 지니는 의미가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음을 암시하는 게 아닐까. 물론 처음에는 친부모에게 배우지 못했던 것들을 경험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숀과 에이블린이 담당하면서 친부모와의 차이점들이 극명히 드러났음에도, 결국에는 그 열악한 양육환경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카이트의 예정을 저지시킬 결정적인 힘이 숀과 에이블린에게는 없지 않았는가. 비단 숀과 에이블린의 문제임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 어떤 모범적인 부모를 데려온다 한들 자녀에게 있어 최선의 길을 찾아주는 시도들은 분명 한계를 맞이할 것이다. 댄의 가정이 그러했듯, 숀과 에이블린의 가정도 그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뿐이다.

억지를 조금만 더 밀고 나가보겠다. 만약 두 가정의 유사성을 인정한다면 숀과 에이블린의 아들이 그러했듯이 어쩌면 댄의 자녀인 카이트도 똑같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되지 않을까 하는 섬뜩한 생각마저 떠오른다. 카이트가 댄의 가정이라는 경계 안에 머무르는 한 이러한 운명에서 자유롭지 못할 터이고, 과거의 행적들로 짐작해보건대 카이트를 죽음으로 이끌 '수렁'은 방임을 일삼는 친부모 본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비약적인 추측을 해보게 된다. 그렇다면 카이트가 댄의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숀과 에이블린의 가정에 편입된다면 이러한 운명이 파훼되는 게 아닌가 생각할 수 있겠으나, 앞서 언급한 두 가정 사이의 대구를 생각하면 그것이 카이트에게 마냥 더 나은 선택이 되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댄의 가정에서 보인 장면들이 숀과 에이블린의 가정에서도 낡은 인습처럼 되풀이되듯, 가정의 전환에도 불구하고 유의미한 변화가 일궈 내지 지 않는다면 어떡할 것인가? 그 어떠한 부모도 본인들이 자녀에게 최선의 양육자가 될 것임을 확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아들을 사고로 잃은 숀과 에이블린 부부의 입장에서도 카이트를 가여워함에도 쉽사리 가족으로 거두지 않는 데에는 이와 비슷한 망설임이 깔려있을 것이다. 이미 부모로서 카이트에게 주었던 그 많은 것들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자녀를 수중에서 건져올리는 데에는 부모로서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앞서기 때문에. 결국에는 그 불안감이 숀과 에이블린으로 하여금 카이트를 놔둔 채 돌아서는 결별의 발걸음을 이끌게 하였다. 이끌 터였다.

그녀가 달음박질치기 전까지는. 그 달음박질은 너무나도 경쾌한 나머지 앞서 내 비관이 펼친 모든 억지 논리를 깨뜨린다.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두 가정 사이의 대구와 유사성에 집중한 나머지, 너무나도 명쾌히 보이는 차이점들에서는 내가 눈을 돌리고 있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건 숀과 에이블린도 마찬가지이다. 그들도 부모라는 역할에의 망설임과 비관에 침잠한 나머지, 그들이 카이트에게 선물해 주었던 모든 순간들은 과소평가하고 있지 않았는가. 그들의 가르침과 훈련이 있었기에 카이트가 스스로 저 울타리에서 뛰쳐나오지 않았는가. '아빠'라는 마지막 두 번의 되뇌임은 댄을 가리키는가, 숀을 가리키는가. 결말에 이르러서야 새로이 형성된 이 가족이 내재하는 불안처럼, 그 호명이 누구를 지칭하였는지는 불확실함으로 가득 차 있다. 허나 같은 단어임에도 그것이 누구를 뜻하였는지에 따라 전해지는 온도의 차이를, 이제서야 우리는 예감할 수 있다. 이처럼 가족이 내포하는 그 모든 불안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차이와 변화라는 작은 희망은 서서히 몸집을 불려가며 분명히 우리에게로 달려오고 있다. 달리기 신기록이구나, 카이트. 이제는 더욱 향상될 일만 남았구나.

여린 화초처럼 가만히 물을 머금고 있기만 해도 충분할 시절에, 스스로를 지탱할 수원(水源)을 직접 찾아 헤메야 했던 우리 어린 날의 잰 발걸음들이 하나씩 영화에 찍혀있다. 영화가 때때로 주는 포근한 온정은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하다가도, 그 안온함이 삽 시에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도처에 깔려있다. 이렇듯 주인공 카이트의 처지는 물가에 둔 어린아이처럼 위태로우나, 영화는 그녀를 비추는 등댓불을 희미하게 둘지언정 절대 꺼뜨리진 않는다.

<남매의 여름밤>과 같은 초연한 기도를 지키다가도,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약동하는 달음박질을 연상시키는 순간적인 저력을 뽐내기도 한다. 말을 건넬 때와 함구할 때를 고를 줄 아는 어른스러운 영화이다. | 빌뇌비아